오르골Orgel
새벽 다섯 시, 성당으로 오르는 길
어둠 속에서 하이얀 눈이 ‘Greensleeves’ 선율을 타고 흩날린다
세상이라는 오르골 속 한복판에서 쏟아지는 눈발을 맞으며 서 있다
불어오는 바람 한 점 없는데
눈송이 저 혼자 휘감듯 오르내린다
길 잃고 방황하는 조각난 마음
도로 위를 굴렁쇠처럼 굴러다닌다
누가 스노우볼을 뒤집고 흔들어 놓았을까
촛불을 밝힌 대성당의 앞마당은 영롱하고
스테인드글라스의 다채로운 빛은 참 평화롭다
오르골이 멈추고 애달픈 음악이 끝나면
그리움과 미움과도 이제는 작별할 수 있을까
정적과 부동만이 있는 오르골은 묘지다
평화는 어둠과 혼돈의 세상 속에 있는 것이다
나를 흔드는 사랑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모든 것이

[류정아]
2025년 『문예바다』 등단.
한글서예작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