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족 명절(名節) 중추절(仲秋節)이 다가온다. 추석(秋夕), 중추가절(仲秋佳節), 한가위, 가배일(嘉俳日)로도 불리는 날과 절기. 밝은 보름달 아래 풍요를 누리는 날이라는 상징을 담고 있는 날.
이날 농사일을 잠시 멈추고 마을 사람들이 함께 즐기는 놀이는 강강술래, 거북놀이, 줄다리기, 씨름, 활쏘기 등등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는 민족의 세시풍속들이 오천 년 민족의 혼(魂)과 기(氣)와 얼(臬)로 이어져 온다.
이 중 단연코 빛나는 유물 중의 하나는 노래로 유전(遺傳)되는 <강강술래>. 이를 21세기 노래로 환생시킨 노래가 태진아(본명 조방헌)의 <신강강술래>.
<신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 보소 보소 손을 잡고 이 강산 돌아보세 / 살기 좋은 이 강산 인심 한번 좋다네 /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 저 높은 빌딩도 빌딩이지만 / 하구야 땅 밑으로 하늘에도 차다네 /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 시원하게 뻗어 있는 고속도로 옆에는 / 신식기계가 논 위에서 잘도 굴러가네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 저 넓은 저 강을 우째 저리 막았노 / 그것보다 저 산 좀 보소 나무 한번 많구려 /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술래가 돈다 / 어허~ 어허~ 무슨 술래가 이렇게도 잘 돌아가요
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 풍년일세 풍년일세 대풍년 일세 / 쌀로 빚은 막걸리로 땀을 식혀보세 / 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1984년 남석현이 노랫말과 곡을 지어서 태진아가 부른 노래 <신 강강술래>는, 임진왜란(1592~1598) 종전으로부터 386년이 지난 뒤의 노래다. 그러니 왜적들의 총칼(조총·일본도) 앞에 결사 항전하면서 피를 흘리던 아비규환(阿鼻叫喚)·무간지옥(無間地獄)의 상황과 대비되는 태평가·풍년가 같은 노랫말과 곡을 얽었다. 살기 좋은 이 강산, 인심 좋은 풍류. 앞소리를 메기고 후렴구를 뒤따르는 형식은 같으나, 노래 속에는 풍류가 넘실거린다.
<강강술래>. 이런 노래는 신시(神市)와 선사(先史) 이래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우리 민족의 가장 현저한 풍각(風角) 유물이다. 탄생 시대의 사회상과 그 시대를 살아 낸 사람들의 감성과 감흥의 응결물(凝結物)이고 입체화된 유물인 동시에 단면도다.
오늘날까지 구전되는, <강강술래>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장군이 왜군에게 위장전술(僞裝戰術)로 사용한 계략의 하나였다. 작전 예상 지역 고을 여인네들에게 남자 옷을 입게 한 후, 왜군들이 바다에서 바라볼 수 있는 산이나 공간 등에서 빙글빙글 돌게 하여, 마치 군사가 행군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던 것. 이 민요는 임진왜란 이전부터 전해왔지만, 임진왜란 이후 많이 계승되었단다.
강강술래는 ‘강강수월래(强羌水越來)’로도 불린다. ‘강한 종족(오랑캐)이 물을 건너서 온다.’는 의미로 공감되기도 했으니, 우리나라를 쳐들어오는 왜적과 관련이 있음이다. 특히 강강술래는 전남 해안 지방, 해남·진도·완도·무안·영광 등지를 중심으로 많이 불리며, 고을마다 가사나 곡조의 빠르고 느리기가 조금씩 차이가 있고,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제8호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해남 우수영에 진을 치고 있을 때, 왜군보다 조선 수군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그래서 이순신은 마을 부녀자들을 모아 남자 옷을 입게 하고, 옥매산(玉埋山) 허리를 빙빙 돌도록 했단다. 바다에서 옥매산 진영을 바라본 왜군은 이순신 장군의 군사가 계속해서 행군하는 것으로 알고, 겁을 먹고 달아났단다. 이런 일이 있은 뒤로 근처의 마을 부녀자들이 서로 손을 잡고 빙빙 돌면서 춤을 추던 관행이 강강술래로 정착되었다는 것이다.
<강강술래> 노래가 품고 있는 민족 서정이다. <강강술래> 자진모리 가사에 군사(軍士)가 얽혀 있다.
‘술래술래 강강술래 강강술래 / 강강좋다 술래 돈다 강강술래 / 앞에 가는 군사들아 강강술래 / 발맞춰서 뛰어가세 강강술래 / 곁에 사람 보기좋게 강강술래 / 먼데사람 듣기좋게 강강술래 / 억신억신 뛰어가세 강강술래.’
자진모리장단의 <자진강강술래>에서는 가락이 급해지며 춤도 빨라진다. 이렇게 원무(圓舞)를 추다가 흥이 나면 <남생이놀이>·<멍석말이>·<고사리꺾기>·<청어 엮기> 등을 이어 부른다.
이순신 장군이 <강강술래> 노래와 춤을 전술적으로 활용했다고 하는, 해남전라우수영(海南全羅右水營)은 해남군 남문길 25-2. 서해와 남해의 바다 물길이 만나는 전략적 요충지로, 명량대첩(1597.9.16.)의 배후 기지로 활용되었던 역사적인 유적이다.
이곳은 고려 말 1377년(우왕 3) 무안 당곶포(목포)에 수군처치사영이 설치된 뒤, 1440년(조선 세종 22) 현 위치인 해남군 문내면 황원곶으로 옮겼다. 1465년(세조 11)에 수군절도사영으로 승격되었고, 1479년(성종 10) 순천 내례포(여수)에 전라좌도수군절도사영이 설치된 후, 이곳은 전라우도수군절도사영으로 부르게 되었다.
처음 영역은 남북 길이 10리, 동서 너비 5리의 크기, 석축의 둘레는 3,843척, 높이 11척, 연못 3개소가 있었다.《전라우수영지》에 의하면 영내에는 민가 620호, 수군 병력 1,085명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에는 전라우도 연해 지역 14관을 관할 하였고,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전라우수사 김억추(1548~1618. 강진 박산마을 출생)는 통제사 이순신과 더불어 어란포 해전과 명량대첩을 거두었다.
우수영 앞바다는 물살이 빠른 명량해협을 이루고, 그 안쪽은 양도(洋島) 섬이 울돌목 거센 파도를 막아 주는 방파제 역할을 하고 있어 천혜의 요새다. 이 전라우수영은 1895년까지 운영된 해안으로 침략해오던 왜적을 막는 방어 지휘사령부였다. 이순신 장군이 강강술래를 돌렸다고 전하는 옥매산(玉埋山)은 해남군 황산면 옥동리와 문내면 용암리 경계, 명량대첩 바다 울돌목을 내려다보고 있는 산이다.
이 산의 이름은 원래 매옥산(埋玉山)이었고, 높이는 173여 미터였는데 지금은 168m란다. 산이 낮아진 이유는 일본제국주의 식민지 시대, 왜놈들이 전쟁용 비행기 제작 원료인 알루미늄을 채굴하기 위하여 산을 깎았기 때문이란다. 1592~1598년 임진왜란 때에는 전쟁으로, 1910년~1945년까지는 식민지로 우리 민족을 수탈한 저들의 반성 없는 작태를 어찌해야 하나. 반성이 없는 자에게는 용서란 있을 수가 없다. 하지만 저들의 야욕에 대비해야 미래를 지켜낼 수가 있다.
<신강강술래>와 같은 노래를 왜 ‘트로트라는 장르명칭’을 통용하는가? 이제 ‘트로트’라는 용어를 ‘아랑가(ArangGA)’로 개명(改名)하여야 한다. 'K-팝, K-컬처, K-글로벌 시대'에, 가장 '비K~적인 단어와 장르 명칭'의 하나는, 바로 'K-트로트'라는 단어이다.
‘트로트(trot)’라는 단어는, 감성과 통습적으로 60여 년의 짧은 세월 속에 '가장 깊숙하게 매몰(埋沒)되어 있고,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전통과 문화예술의 풍격(風格)과 품격(品格)과 취흥(醉興)의 표면에 가장 뾰족하게 솟아 있는 반(反) 글로벌적인 장애물(障碍物)'이다. '트로트(trot)'라는 단어의 원산지는 1914년 미국 가수가 부른 노래, '폭스 트로트(Fox Trot)'이다. 'FOX(여우)+TROT(빠르게 달리다)'
이 용어가 일본으로 천이(遷移), 일본의 엔카(演歌)와 융합되어 '도로도, 도로~또, 도롯도'로 불린다. 이것이 식민지 시대 터널, 34년 351일 간의 세월 속에서, 우리나라로 유입된다. 이것이, 1960년대 우리나라 가수들이 부른 전통가요풍의 장르명칭으로 불리던, '뽕짝'이라는 단어를, ‘통용하기에 비속한 어감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견해와 의견의 대안으로 '트로트'라는 단어를 도입하여 사용한 것이, 오늘날까지 통용해 온 통설적인 내력이다.
도입하고 통용한 이력과 내력도 불분명하다. 도입한 사람이나, 통용한 개인이나 기획사이거나 언론사나 방송사도 분명하지 않다. 개인적인 도입이 통습(通習)의 단어와 용어와 장르명칭이 된 전형(轉形)이다. 그러니, '트로트'라는 단어(용어) 혹은 장르 명칭은 우리의, 우리 민족의 고유한 정(情)과 한(恨)과 치유와 화합과 감성과 감정의 DNA를 함의(含意)한 용어가 아니다.
이에 필자(유차영)는, '트로트'라는 단어(장르 명칭)을 '아랑가(ArangGA)'로, '개명(改名)하거나 신작명(新)作名'하기를 주창(主唱)하며, 우리 민족의 고유한 노래 ‘아리랑’에서 ‘아랑’을, 노래의 통용어 ‘가요’에서 ‘가’를 차운 융합한 단어 아랑가(ArangGA)를 대한민국 특허청(지식재산처)에 '특허상표'로 출원하여, 특허상표를 취득한 것이다(특허상표권 번호, 제40-2426336)
이제는, '트로트'라는 단어를, '아랑가(ArangGA)'로 바꿔야 한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1964년 창립된 이래 2026년 9월 기준으로 제25대 이시화 회장이 운영하고 있다. 손목인, 조춘영, 황문평, 길옥윤, 박춘석, 김영광, 지명길, 윤명선, 추가열 등이 역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2026년 대한민국 음악출판사는 390여 개, 회원은 6만여 명, 실연자협회 가수들은 4만여 명, 연간 예산은 4천4백억 원 정도가 수입되고, 4천여억 원이 지출되는 상당한 단체이다. 여기에 공연을 위한 외국 협약은 60여 개국, 60여개 단체, 저작권 공유를 위한 협약국도 40여 국 40여 개 단체가 된다. 이들 상당수가 ‘트로트’라는 단어에 비즈니스(Biz)의 맥락을 걸치고 있다.
그러니, ‘트로트’라는 단어(용오, 장르 명칭)를 ‘아랑가(ArangGA)’로 변경 또는 신작명(新作名) 하자는 주창(主唱)에 대하여~ 안티 혹은 반대, 현상유지 혹은 주저하거나 묵시적으로 저항하는 관성(慣性)의 공감대(共感帶)가 얼마나 끈끈하겠는가.
역사의 진화 강화 승화는, 한 개인의 의지와 열정이 씨앗이 되고, 이에 공감하는 동반자가 도반(道伴)의 행열(行列)을 만들고, 이 행열에 동행(同行)의 발길, 동행은 유행(流行)으로 진화, 유행은 문화(文化, 文華)가 되고 문화의 지속은 역사(歷史)의 마디가 됨은~ 동서고금의 역사천이(歷史遷移) 궤적(軌跡)에 쌓여 있지 않는가.
이제는, '트로트'라는 단어를, '아랑가(ArangGA)'로 바꿔야 한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글로벌 세계적인 꽃으로 피어나서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가장 한국적인 씨앗으로 번식, 만발하기 위하여...
[유차영]
한국아랑가연구원장
유행가스토리텔러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
경기대학교 서비스경영전문대학원 산학교수
이메일 : 519444@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