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통외식조리직업전문학교] 홍명희 대표 |
세계가 K-푸드에 주목하고 있다. 김치와 비빔밥, 불고기를 넘어 다채로운 한식 메뉴들이 세계인의 식탁으로 영역을 넓혀가는 모습을 보면 절로 마음이 뿌듯해진다. K-푸드의 세계화는 분명 자랑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나는 그 화려한 조명 뒤에서 우리가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고 생각한다.
“정작, 지금 한국인의 식탁은 건강한가?”
오늘날 우리의 식사 풍경은 가파르게 변하고 있다. 아침은 커피 한 잔으로 때우고, 밥 대신 빵을 찾으며, 지친 저녁은 배달음식으로 해결하곤 한다. 빵과 커피, 간편한 배달음식 모두 바쁜 현대인의 삶에 유용한 선택지임은 분명하다. 문제는 특정 음식이 아니라 우리의 식사가 점차 그저 ‘끼니를 해결하는 일’로만 치부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실을 마주할 때마다 나의 어린 시절과 네 아이를 키우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1970년대,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이 시행되던 시절 나는 네 아이를 키우는 워킹맘이었다. 지금처럼 간편식이나 배달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던 때라, 매일 아침 네 아이의 도시락을 싸는 일은 그 자체로 커다란 전쟁이었다. 반찬거리가 마땅치 않은 날에는 고추장에 김치 하나 털어 넣어 도시락을 싸 주기도 했다. 그때는 그것이 특별한 음식이라 생각지 않았다. 그저 바쁜 엄마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위해 마음을 담아 차려낸 평범한 한 끼였을 뿐이다.
세월이 흘러 아이들이 자라 모두 가정을 이루었고, 나는 어느덧 아홉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었다. 돌이켜보니 그때 아이들에게 먹였던 한 끼 한 끼는 단순히 배를 채우는 음식 그 이상이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장과 양념, 제철 재료로 식탁을 차렸고, 그 식탁에 둘러앉아 시간을 함께 나눴다.
어린 시절 자주 마주했던 음식은 자라면서 익숙한 맛이 되고 잊히지 않는 삶의 기억으로 남는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어른이 된 후에도 어떤 음식을 먹었을 때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어떤 식재료를 찾게 되는지 결정짓는 바탕이 된다. 식습관이란 하루아침에 뚝딱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가랑비 옷 젖듯 형성되는 '생활의 문화'인 까닭이다.
![]() ▲ [전통외식조리직업전문학교] 할머니의 열무김치를 좋아하는 손자 |
얼마 전, 마음이 뭉클해지는 사진 한 장을 보았다. 막내딸이 SNS에 올려둔 사진이었다. 네 살배기 아홉 번째 손주가 할머니인 내가 담아준 열무물김치를 볼이 미어지게 먹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을 보며 한참을 웃다가, 문득 깊은 감회에 젖어들었다. 어릴 적 고추장과 김치만으로 네 아이의 도시락을 채우던 엄마가, 이제는 손주에게 열무물김치를 맛있게 먹이는 할머니가 되어 있었다.
‘아, 음식도 이렇게 대물림되는구나.’
단순히 입맛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 경험한 음식의 풍미, 가족과 둘러앉았던 식탁의 온기, 제철 식재료의 싱그러움, 함께 정성을 들여 만들어 먹었던 기억이 한 사람의 평생 식생활에 깊은 뿌리를 내리는 것이다.
평생 현장에서 조리교육을 해온 사람으로서, 내가 식문화 교육의 중요성을 끊임없이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히 “이건 몸에 안 좋으니 먹지 마라”라는 단편적인 통제가 아니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이 식재료가 어디서 와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여릇이 함께 나누는 식사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몸소 경험하게 해주는 교육이 필요하다.
최근 추진되고 있는 여러 정책들, 이를테면 10월 24일 한식의 날 제정이나 글로벌 한식교육기관 수라학교의 설립 논의 등은 무척 반길 만한 일이다. 다만 이러한 정책적 노력과 함께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 있다. K-푸드의 세계화를 외치면서 정작 우리 아이들이 밥보다 빵을, 집밥보다 배달음식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진 않은가? 우리 매일의 일상 식문화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나침반을 점검해 보아야 한다. 정부와 민간업계 그리고 학계와 교육기관 등이 하나가 되어 소소한 우리의 밥상 먼저 돌아보는 회복이 필요하다.
지나간 옛 식생활로 무작정 돌아가자는 뜻이 아니다. 시대가 달라진 만큼 바쁜 현대인도 부담 없이 실천할 수 있는 건강한 한 끼, 1인 가구도 쉽게 차려먹는 균형 잡힌 식사, 젊은 세대의 감각으로 재해석한 한식, 그리고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우리 식재료와 친해지는 교육 등 '오늘날에 맞는 새로운 한국형 식문화'를 함께 가꾸어 가야 한다.
이러한 식문화의 회복은 각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배움의 현장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 지난 30년이라는 시간 동안 조리 현장을 지키며, 나는 요리가 한 사람의 삶과 진로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수없이 목도해 왔다. 청소년 대상의 위탁교육으로 요리의 매력을 처음 알게 된 학생들부터 국민내일배움카드, 새일센터, 소상공인 시장진흥공단, 중기청 연계 교육, 그리고 일상의 생활 요리 클래스를 찾은 이들까지. 누구나 스스로 소박하고 정갈한 한 끼를 차려낼 수 있도록 돕는 실천적 교육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식문화를 받치는 단단한 밑거름이었다.
일흔이 넘은 지금도 나는 현장에서 조리교육을 이어가고 있다. 네 아이의 엄마에서 아홉 손주를 둔 할머니가 되었지만, 현장에서 사람들을 만날수록 음식과 교육에 대한 나의 믿음은 더욱 명확해진다. 좋은 식생활은 건강을 지키는 가장 기본이 되는 습관이며, 한 사람의 바른 식습관은 다음 세대의 삶으로 고스란히 이어진다. 예전엔 미처 몰랐다. 내가 아이들에게 싸주었던 소박한 도시락 하나하나가 훗날 그 아이들의 입맛과 기억이 되고, 마침내 손주들에게까지 흘러가는 삶의 유산이 될 줄은.
오늘도 나는 맛과 영양을 넘어 누군가의 삶에 소중한 기억으로 남을 식탁을 준비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 또한 이러한 마음으로 일상의 식탁을 마주하고, 그 따뜻한 경험이 자녀들에게 전승되기를 소망한다. 나아가 이는 1인 가구를 비롯한 모든 가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자신을 위한 식사 역시 단순한 ‘생존을 위한 한 끼’가 아니라, 나를 돌보는 문화적 행위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끼의 식사가 한 사람의 건강을 만들고, 한 가정의 식탁이 한 세대의 문화를 만든다. 이처럼 저마다의 식탁이 단단한 문화적 기반을 갖출 때, K-푸드의 진정한 정체성과 저력 또한 세계를 향해 활짝 피어날 것이다. K-푸드를 세계인의 식탁에 올리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일은 우리 아이들과 국민의 식탁 위에 건강하고 따뜻한 한국의 식문화를 다시 올려놓는 것이다. 진정한 K-푸드의 세계화는 바로 우리의 안방, 그 소박한 식탁에서부터 시작된다.



